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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 애월면 리–학살터–자운당-2, 참조) 이날 사건 후에도 주민학살은 끊이지 않았다. 한두 명씩 토벌대에 붙잡혀 총살 되거나 군법회의를 받은 뒤 행방불명됐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8월 19 일에는 강돈아(43, 남)가 예비검속됐다 학살됐다. 그는 당시 구장 직책을 맡고 있 었다. 그는 조사할 것이 있다며 연행된 후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됐다. 가족들은 그런 소식을 당시 들었으나 지금껏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마을 재건은 소개 다음 해인 1949년 가을 경 상귀 본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 다. 본동과 떨어진 부처물동과 소앵동의 주민 일부가 함께 성을 쌓고 살았다. 소 앵동은 더 늦은 1953년에 재건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소앵동은 이미 주민들이 상 귀 본동에 정착하거나 하귀2구 학원동이 먼저 복구되자 이곳에 대부분 정착해버 려 원주민이 거의 없는 상태로 변해버렸다. 또한 4·3 시기 상귀리 지경이었던 예 원동 동동네도 재건 후 수산리로 행정이 개편돼버렸다. 상귀리 4·3 희생자로 정부가 인정한 주민은 80명(남성 68명, 여성 12명)이다. 1) 잃어버린 마을 <부처물동(불수동 佛水洞)> 가. 소재지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317번지 일대 나. 개요 350여 년 전 설촌된 것으로 알려진 부처물동은 4·3으로 소개한 후 주민들이 본 동에 정착하면서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파군봉 서남쪽 고성천(병풍천)을 끼고 형 성된 부처물동은 4·3 시기 12가호의 작은 마을이었다. 부처물동에서 4·3으로 희 생된 사람은 4명이다. 그중 한승택(36, 남)과 김원어(30, 남, 이명 김태호), 김태 석(18, 남)은 소개 전에, 김대규(18, 남)는 소개 후 학살됐다. 당시 호주로는 김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