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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2) 민간인 수용소 - 절간고구마 창고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171-26번지 나. 개요 서청특별중대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잡아온 사람들을 수용했던 이곳은 당시 한 재옥 소유의 절간고구마 창고였다. 시흥리 강인옥(1928년생, 남)의 증언이다. “한 40평 됐어. 그때 내가 들어갈 때는 105명이 있었지. 각처에서 잡아온 사람들이 야. 고문하고 했지. 조서라고 하는 거는 살려줄 거는 머리 위에 ○치고, 살려 두지 않을 거는 ×를 쳤어. 그러다 총살할 거면 이제 오후 두 시나 세 시쯤 터진목에 데 려가서 팡팡 쏘아버렸지. 사람 하나 죽이는 게 문제라? 뭐, 이유가 없어. 여자들도 같이 가면 죽었어. 여자들… 서북청년한테 몸 희생당한 사람 많았지.” 당시 이곳에 여러 차례 끌려가 고문 받았던 이기선도, “심지어 성산 사람 하난 뭐, 죽이러 가면서도 걷지 못하니까 당가(들것)에 들고가 죽였단 말이야. 그렇게 취조를 해놨으니 제 발로 갈 수가 없었지. 서청이 성산포 감저공장에 한 백여 명 을 잡아다가 취조해서는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람, 사진이나 그런 거 안 산 사람 들을 따로 죽일 걸로 구분했지” 하며, 자신은 지금도 당시 고문후유증이 남아 있 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교사들도 대거 끌려와 고문을 받았다. 1949년 1월 9일, 동남국민 학교(당시 성산서국민학교, 현재 동남초등학교)에서 등사판 분실사건이 발생했 다. 그러자 서청은 ‘무장대의 삐라 제작을 위해 빼돌렸다’는 혐의로 교장과 교사 들을 연행해 모진 고문을 가하다 총살했다. 4·3평화재단은 조사를 통해 이날 희 생된 교사들은 동남국교의 교장 김영택(32, 남, 삼도동)과 오달송(32, 남, 수산리, 교사), 정맹존(22, 남, 고성리, 교사), 홍창수(21, 남, 고성리, 교사)를 비롯해 성산 국교(성산동국민학교, 현 성산초등학교)의 김두옥(18, 남, 고성리, 교사)과 정양 심(19, 남, 고성리, 교사) 6명이라고 밝혔다. 3 3)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 자료집 ② - 교육계 4·3 피해실태』, 2018, 245~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