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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성산리 주민 이기선도, “또 말 들어보민 터진목 가서 죽이는데 총알이 아깝다고 대창으로 찔러 죽이라고 했다는 그런 말을 들었어요. 순 악질이었주”라고 증언했다. 다. 현황 해안 암반이 드러난 광치기여 중간지점에서 일출봉 아래 수마포까지는 지금도 모래사장이 죽 이어져있다. 제주도의 유명한 관광지가 4·3 시기 대표적 주민 학 살터이듯 이곳도 성산과 구좌주민들에겐 잊을 수 없는 악몽의 장소, 학살터였다. 현재 이곳 광치기해안에는 제주4·3 성산읍희생자 추모공원이 조성돼 있기도 하 다. (고성리–추모공원-제주4·3 성산읍희생자 추모공원 참조) ② 우뭇개동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나. 개요 일출봉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자연포구로 지형이 4자(四字) 모양으로 움푹 들어 간 곳이란 데서 우뭇개라 불린다. 이곳에서는 1949년 1월 2일, 오조리 주민 20 여 명이 다이너마이트 사건으로 집단총살됐다. 해방 후 일부 해안마을 주민들은 일본군이 버리고 간 다이너마이트를 어업용으 로 사용했다. 또한 이들 마을에는 다이너마이트의 사용법을 아는 사람들이 있어 1948년 겨울철부터는 민보단에서 마을 경비용으로 사용하려고 초소에 보관하기 도 했다. 그런데 오조리에서는 이 다이너마이트가 서청에 알려지게 되면서 비극 은 시작됐다. 1948년 12월 29일, 다이너마이트를 소지하고 있던 한 주민을 끌고 온 서청은 오조마을 주민들을 공회당에 모이게 하고는 집집마다 수색하면서 집합이 늦은 주 민들을 끌어내 성산포 감저창고로 데려갔다. 이날 끌려간 사람 중에는 마을책임 자인 구장 고태종과 민보단장 홍성강도 끼어 있었다. 이날 서청이 주민들을 연행 한 이유는 다이너마이트로 자기들을 죽이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이들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