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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 성산면 날짜미상: 수산리 - 고대휴(20, 남) 이외에도 이곳에서는 구좌면 세화리나 하도리, 종달리에서 붙잡혀온 주민들이 여러 차례 학살됐다. 이곳에서 형을 잃은 고성리 주민 홍성기(2003년 76세, 남) 는, “그때 형님이 희생됐는데 우리 형님은 일본서 살다가 발동기를 하나 사가지고 마침 해방을 맞아서 왔다. 불과 4개월 정도 살아가지고…. 그때는 서북청년한테 누구도 협조 안 해주니까 사진을 가져와 가지고, 대통령 이승만 사진을 해가지고 집에 돌아다니면서 사라고 했지. 우리 형님은 필요 없다, 그것뿐이었어…. 제일 억 울한 것이 총으로 한 번 해서 쓰러지면 그걸로 죽어서 말아불민 좋은데 그때는 의 용대, 특공대 해가지고 몇 사람씩 성산포에 주둔했단 말이야. 그런데 죽은 놈 위 에 매질한다고, 총 쏘아서 쓰러진 것을 대창, 철창으로 시험한다고 막 찔러놨어. 그러니까 부모로써 동생으로서 그걸 눈으로 볼 수 없었지. 나도 그날 못 가서 뒷 날 가가지고 형님 시신을 모시기도 했는데 그때는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몰 구루마 끄성 강 시신을 모셔왔어. 이거는, 사람을 잡아도 그렇게 잡을 수가 없어. 막 찔러놓으니까 상처 안 난 데가 한 군데도 없는 거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항공사진으로 본 1948년 5월의 터진목 일대 모습(국토지리정보원). 아래 큰 원 부분 검은 곡선 지역이 터진목 학살터 에 해당되는 백사장이다. 곡선 오른쪽 끝지점은 성산리 마을 입구로 좁은 의미의 터진목이며, 왼쪽 끝부분은 현재 제주 4・3 성산읍희생자 추모공원으로 조성된 광치기여 중간지점이다. 그리고 사진 위쪽 작은 원은 당시 서청특별중대가 주 둔했던 성산동국민학교 옛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