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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의 묘소 2기는 배창근지사의 이름은 없고, 두분의 어머니 묘비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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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불시에 들이닥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수갑을 찬 채 끌려가셨다. 그들은 말을 타고 갔지만 아버지는 짐승처럼 줄에 묶인 채 20km가 넘는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나는 엉엉 울면서 아버지를 따라 갔지만 너무 어린 탓에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품에 안으시고 몇 시간이나 정신없이 흐느꼈다.'-<『배민수 자서전』, 38쪽> 배창근의 사형 집행은 『순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실릴 정도로 당시 정부도 주목했다. 배창근은 1909년 7월 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형 순국했다. 청주의 배민수 가족은 사형 집행을 한지 며칠 후 서울 서대문교도소로부터 '시신을 가져가 장사지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배민수와 어머니, 그리고 청주의 친척들은 시신을 받아 무학산 자락(지금의 연세대학교 뒤산)에 봉분 없는 무덤을 만들었다. / 조혁연 대기자(충북대학교 사학과 박사) 출처 : 중부매일 공훈록에 부친 배창근지사의 묘소가 고양시로 되어있다. 아마도 봉분없는 무덤이었기에, 이곳에 별로도 봉분,묘비를 세우지 않고, 어머니 두분의 묘소만 이장하신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