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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면별로 결정된 장소에서 기념식을 치르도록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경찰은 북국 민학교 집회와 시위는 원천봉쇄할 것이며, 집회장소도 읍내에서 벗어난 비행장 인근에서 개최하도록 권고했다. 3월 1일 11시, 제주북교에서 기념식이 시작됐다. 이날 기념식장인 제주북교 운 동장을 비롯한 그 주변에는 행사 시간 이전부터 3만여 인파로 넘쳐났다. 마을 단 위로 주민들이 몰려들면서 경찰의 검문도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í��탐라개벽 이래 최대의 인파��였다. 고창무 금융조합 이사의 사회로 대회는 진행됐다. 먼저, 안세훈 위원장이 단상 에 올라 “3·1혁명정신을 계승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조국의 자주통일 민주국가를 세우자”고 개회사를 낭독했다. 그 후 각계 대표의 연설로 이어지면서 행사는 3시 간이 지난 오후 2시쯤 성황리에 종료됐다. 3·1발포사건은 행사 후 참여자들이 해 산해 돌아가는 과정에서 관덕정 마당에서 발생했다. 다. ���황 당시 학교가 있었던 자리에 지금도 제주북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그러나 계 속된 증축과 개보수로 당시의 건물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현재 학교에는 제주북 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사료관이 설립돼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③ 관덕정 및 관덕정 앞 광장 가. 소재지 제주시 관덕로 19 (삼도2동 983-1번지) 일대 나. 개요 제주읍 중심가에 위치한 관덕정(보물 제322호)은 1448년 세종 30년 목사 신숙 청이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건축했다. 원래 관민이 함께 공사를 논의하는 곳이었 고, 간혹 잔치를 베풀거나 죄인을 다스리는 용도로도 쓰였다. 관덕정은 제주역사 의 고비마다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다. 1901년 이재수란 당시에는 민군 장두 이 재수에 의한 피비린 천주교인 척살이 벌어졌고, 해방 후인 1947년 3월 1일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