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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1) 학살터 ① 방두리왓 (당두리왓, 신엄지서 앞밭) 가. 소재지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 나. 개요 방두리왓은 1948년 11월 중산간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진 이후 주로 신엄지서 에 갇혔던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수차례에 걸쳐 희생된 학살터이다. 이곳에서 있 었던 일련의 학살사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11일 새벽, 무장대는 신엄지서와 우익인사 집 네 곳을 지목해 습 격했다. 이때 우익인사들은 급히 피하거나 부재중이어서 화를 면했다. 그러나 신 엄리 대한청년단장 김여만의 가족 3명이 무장대가 지른 불에 질식해 죽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신엄지서 경찰은 11월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이미 중 산간 마을에서 잡혀와 있던 유수암리, 수산리, 장전리 주민 등 50~60명을 이곳 방두리왓에서 학살했다. 그중 유수암리 주민들은 절모를굴에 피신해 있다가 이날 군인들에게 발각돼 신엄지서로 끌려온 후 학살됐다. 그리고 수산리 희생자는 11 월 5일 이 마을을 습격한 토벌대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무조건 연행해 지서로 잡아갔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희생자는 11월 11일에 강군선(19, 남) 등 24명(유수암리 21 명, 상귀리 1명, 하귀리 1명), 11월 12일에 강근호 등 13명(수산리 11명, 신엄리 1명, 장전리 1명)으로 모두 37명이다. 당시 총살 현장을 지켜 본 임두병(2003년 80세, 남)은 “길에 트럭을 세워 놓 고… 그 차에는 기관총이 장착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끌려 온 사람들을 밭에 일렬 로 세워놓더니 기관총을 내갈겼지” 하면서, 그때의 끔찍했던 광경을 잊을 수 없다 고 증언했다. 기관총이 난사되는 속에서도 신엄리 하달제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 다. 그러나 그의 일시 생존은 더 큰 희생을 낳았다. 하씨는 신엄리 자신의 집 마룻 바닥에 숨어 있다가 한 달 만에 발각돼 1948년 12월 17일 부인과 아들, 딸과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