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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면 다음과 같다. 1948년 4월: 백창원(42, 남)은 4·3이 발발하자 아내와 딸(3세)을 데리고 입 산한 후 행방불명됨 5월 5일: 백경천(62, 남)은 아들 백창원이 무장대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후 행방불명됨 5월 18일: 이태화(45, 여)가 딸 문순옥(18, 여)과 아들 문선일(16, 남)을 데리고 수산리 시댁에 제사지내러 가다 무장대에 납치돼 피살 됨. 사위 양귀봉이 경찰이라는 이유였음 7월 31일: 이재만(31, 남, 제주검찰청 검사보)이 신엄 어머니집에 가다 토 벌대에 총살됨 10월 26일: 강병호(24, 남)가 신엄리 상동에 갔다가 무장대에 납치된 뒤 피 살됨 10월 28일: 양영호(30, 남, 경찰)가 휴가차 집에 왔다가 무장대에 납치된 뒤 피살됨 11월 5일: 이창우(27, 남, 이재만 동생, 경찰)는 형 이재만이 무장대에 가 담했다는 이유로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11월 7일: 강위조(45, 남)는 아들 강병호를 찾으러 나갔다가 무장대에게 피살됨 무장대는 그 후에도 두 번 더 신엄지서를 공격했다. 1948년 11월 11일에는 우 익인사의 집 네 곳을 지목해 기습했다. 이날 애월면 대청단장 1 겸 신엄리 대청단 장이었던 김여만 댁이 공격을 당해 김여만의 작은부인 고선잠(35, 여)과 아들 김 ○○(3, 남), 그리고 애기업개 정추자(9, 여)가 살해됐다. 무장대는 이들을 죽창으 로 찌른 뒤 집에 불을 질렀고, 이들은 연기에 질식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1) 신엄리 대청은 총 300명의 청년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을 출신지별로 보면 신엄 140명, 중엄 60 명, 구엄 100명, 용흥 30명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30명은 초토화작전이 벌어지던 1948년 말께에 는 특공대로 재편돼 99식 총을 들고 지서 등지에서 근무하며 토벌대의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