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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공격하려 한다고 조작해 마을 사람들을 잡아간 것이에요”라고 증언했다. 당시 희생자는 민보단장이었던 홍성강(42, 남)을 비롯해 구장 고태종(47, 남), 강 관선(33, 남), 강희숙(36, 남), 고봉만(미상, 남), 고순현(19, 남, 이명 고순봉), 고태 현(26, 남), 김봉효(61, 여), 송균석(27, 남), 송도선(34, 여), 송원진(64, 남), 송춘식 (31, 남), 송치배(28, 남), 송태립(65, 남), 오만두(41, 남), 오영보(28, 남), 현서홍 (19, 남, 이명 현세홍), 홍평형(36, 남, 이명 홍평영), 오창희(48, 남)의 19명이다. 오조리 4·3성은 주민들이 집집마다 출력해 인근 밭담을 지게로 지어 나르며 쌓 았다. 축성 후엔 남녀 모두 보초를 서야 했다. 남자들이 무장대가 습격 든 적이 있 는 짐수막쪽 지역을 담당해 병문개와 짐수막(논동네), 안카름, 앞동네 2개소 등 5 군데의 초소를 담당했다. 여자들은 북문과 안카름, 소금막쪽에 보초를 섰는데 이 를 위해 여성들은 별도의 훈련도 받았다. 당시 여성들은 성산서국민학교(동남국 민학교)에서 숙박을 하면서 훈련을 받았다. 당시 부대장은 표선사람이었고, 시흥 리 김자봉이 훈련대장을 맡았다. 취사는 오조리 출신 4~5명이 맡았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오조리 4·3희생자는 모두 49명(남 42명, 여 7명)이다. 1) 4·3성 - 오조리 병문동산 4·3성 가. 소재지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689-2번지 일대 나. 개요 강원희(1947년생, 남)가 자신의 집 앞이 당시 정문(북문)으로 지금도 흔적 일부 가 남아 있다며, “우리집이 오조로 112인데 당시엔 집은 없었고 초소가 있었다. 바로 이 길이 북문 자리다. 성담이 잘 남아 있었는데 집을 지으면서 많이 허물어 졌다. 오조리 700번지의 울타리 담이 성담이다. 마을 쪽 길 따라 이어진 울담은 성담처럼 보이지만 성담이 아니라 나중에 갔다가 쌓은 것이다. 오조리 698-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