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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7 애월면 4. 신엄리 신엄리는 일제강점기부터 1·2·3구로 나누어진 큰 마을이었다. 그중 1구와 2구 (현재 중엄리)는 일주도로변 바닷가 쪽으로 서로 이웃해 있었고, 3구(현재 용흥 리)는 1·2구와 떨어진 중산간 마을이었다. 신엄리에는 4·3 시기 신엄지서가 위치해 있었다. 신엄리에는 해방 초기 백창원 과 이재만 같은 유명한 좌익 활동가가 있었다. 특히 백창원은 신엄리에서 청년운 동을 주도하며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1947년 3·1사건 후, 제주읍의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던 신엄리 청년들이 구엄리에 가서 구엄 우익청년단원들을 기념 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구타한 사건이 발생한 후 상황은 급변했다. 곧 미군정은 3·1기념식이 불법집회라며 집회를 주도한 단체와 활동가들의 검거령을 내렸다. 백창원을 비롯한 청년들은 산으로 가거나 일본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신엄리는 구엄리와 더불어 우익단체가 주도하는 마을로 차츰 변했다. 1948년 4월 3일 무장대는 신엄지서와 구엄리를 공격했다. 이날 무장대의 공격 으로 경찰 1명이 부상을 입고, 구엄리 우익인사 5명이 살해됐다. 신엄리에서는 대 한청년단 총무였던 홍인경의 집을 비롯한 우익인사의 집들이 습격당했다. 이날 신엄리에서 임두창(32, 남)을 비롯해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후 신엄리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1948년 11월 초까지 사건을 정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