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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서 활동헌 사람도 세 명 정도 있었지. 옛날엔 오조리가 제주도에서 제일 작은 마을이라 고 했어. 우리 마을 남자들이 4·3에 죽고, 밀항가다 죽고 허니 남자들이 엇언 집 짓는 것도 어려운 동네였어.” 다음은 오조리의 주요 주민학살사건이다. 1948년 5월 22일: 5·10선거 이후 무장대가 주민들을 보복살해하려 한다는 소식 을 들은 강달권(22, 남)을 비롯한 14명(오조리 10명, 종달리 4 명)이 부산으로 피신하려 배를 타고 나갔다 배가 전복돼 13명 이 사망하고 1명이 살아돌아옴 10월 27일: 강두선(18, 남)을 비롯한 강안색(30, 남), 강정도(33, 남), 박태 성(17, 남) 박태흥(16, 남), 송태생(26, 남) 6명이 성산포 터진 목에서 토벌대에 학살됨 11월 1일: 박우창(28, 남)이 함덕 대대본부에서 석방된 후 토벌대에 재연행 됐다 성산포 터진목에서 학살됨 (성산리-학살터-터진목, 참조) 1949년 1월 2일: 1948년 12월 29일, 2연대 3대대의 서청특별중대가 오조리 주 민들이 경비용으로 가지고 있던 다이나마이트를 트집 잡아 주 민 20여 명을 연행함. 다음 날 송인표(49, 남)가 고문치사하고, 다음 해 1월 2일에는 송치배(28, 남, 송인표 아들)를 비롯한 19 명이 성산리 우뭇개동산에서 학살됨 (성산리-학살터-우뭇개동 산, 참조) 2월 1일: 강승석(77, 남)과 오상아(68, 여) 2명이 성산포 터진목에서 서 청에 학살됨 2월 4일: 송덕순(60, 여)이 성산포 터진목에서 학살됨 2월 13일: 오영화(32, 여)가 성산포 터진목에서 학살됨 4·3 시기, 오조리에서 발생한 가장 큰 주민학살사건은 다이너마이트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제민일보 4·3취재반의 『4·3은 말한다 ⑤』(59쪽)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