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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망했다. 그 후 학생들은 마을 향사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다. 다. 현황 현재 구엄초등학교 자리이다. ③ 수산사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186번지 나. 개요 수산사는 1933년 승려 최청산이 구엄리 원물 북쪽에 초가 3동을 지으며 창건 했다. 당시에는 원물에서 이름을 따 원천사로 이름했다. 그 후 1942년, 승려 김금 륜이 기와 법당 1동을 증축하고 수산사로 사찰명을 바꿨고, 1945년부터는 승려 고정선이 운영권을 이어받았다. 행정구역상 구엄리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 구엄 리와 수산리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신도수는 수산리가 더 많다. 사찰명은 원천 사, 수산사 이외에도 수원사로 불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절에 일본군 중 대 병력이 잠시 주둔하기도 했었다. 수산사는 남로당 활동을 했던 승려 고인수가 은신한 것이 발각되며 1948년 11 월 15일, 토벌대의 급습을 받았다. 당시 수산사 주지는 고정선(41, 남, 장전리)이 었고, 마침 절에는 그의 동생 고의선(23, 남, 장전리)이 피신해 있었다. 토벌대는 고정선과 고의선을 함께 연행했다. 그 후 고정선은 1949년 6월 28일 군법회의에 서 사형언도를 받아 같은 해 10월 2일 정뜨르비행장에서 사형된 것으로 추정되 며, 고의선은 연행된 후 지금까지 행방불명 상태이다. 한편, 수산사가 언제 소실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토벌대는 구엄리를 지키 는데 수산사가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건물이나 불구들을 불태웠다. 그러나 소 실 당시, 불상이며 탱화 같은 불구(佛具)뿐만 아니라 건축자재 일부는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