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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나. 개요 구엄리 향사에서는 1947년 3·1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인 3월 2일, 신엄 청년들 과 구엄 청년들 간에 충돌이 있었다. 이 사건은 그 후 신엄리와 구엄리 주민들에 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47년 3월 2일, 신엄 출신 백창원(41, 남)을 중심으로 구엄리 및 신엄리 활동 가들이 구엄리에 모여들었다. 이유는 구엄리 주민들이 3·1절 기념식에 참가하지 않은 것을 따지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문영백과 문용준 등 구엄리 우익인사 들이 이들에게 몰매를 맞았다. 이 사건은 급거 출동한 경찰기동대에 의해 진압되 었다. 그러나 폭행사건에 관련됐던 사람들은 구금되거나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 사건은 그 후 두 마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구엄리는 더욱 강고한 우익마을로 변했고, 반면 신엄리 청년들은 경찰에 쫓기면서 군대에 투신하거나 입산하는 기 로에 서게 됐다. 다. 현황 구엄리 향사 옛터는 현 구엄 노인복지회관 북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 연립 주택이 건설되면서 옛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구엄리 향사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