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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성산면 현재 정부가 인정한 시흥리 4·3희생자는 10명(남 8명, 여 2명) 이다. 1) 4·3성 - 시흥리 상동 4·3성 가. 소재지 서귀포시 시흥상동로 53번길 27-18 주택 남쪽 밭 (시흥리 537번지) 나. 개요. 시흥리 4·3성은 1948년 겨울, 주민 모두가 동원돼 쌓았다. 그 후 경찰은 민보단 원(단장 강인옥)들을 보초 세우면서 대나무 죽창만을 들려줬다. 이에 시흥주민들 도 오조리 주민들처럼 두려움을 느껴 다른 무기를 생각하게 됐다. 마침 마을에는 일본군이 버리고 간 고기잡이용 다이너마이트가 있었다. 다이너마이트 기술자도 있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1948년 12월 29일, 오조리에서 먼저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서청토벌대는 오조리 주민들을 집결시키고 20여 명을 끌고가 고문하다 며 칠 후인 다음해 1월 2일, 19명을 일출봉 아래 우뭇개에서 학살하고 말았다. 이 여 파는 곧 시흥리로 번져 같은 날인 1월 2일 부갑생과 부성순이 학살됐고, 일주일 후인 1월 9일에는 강창수가 학살됐다. 강씨의 아들 강명돈(1943년생, 남)은, 부 친이 단지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잡혀가 총살됐다며 당시 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우리 아버지(강창수, 29, 1949년 1월 9일 터진목에서 총살됨)는 다이나마이트하는 기술, 만드는 기술이든, 사용하는 기술이든 일본서 배워가지고 제주도 들어왔어요. 당 시 죽창 갖고, 순경 몇 사람은 총을 갖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폭도들을 상대하기가 힘들 것 같으니까 다이나마이트를 만들자. 성을 쌓고 폭도가 올 것 같으면 안에서 그걸 던지 면 상대보다 우리가 더 세지 않겠느냐, 방어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해서 다이나마이트를 개발하자고 한 거죠. 당시 민보단이 결성돼 있었습니다. 민보단장이 그걸 재조해달라 고해서 (아버지가) 만들어줬어요. 그걸 갖고 보초를 서는 거죠. 그 후 주민들이 보초서 고, 서쪽 정문은 우리 아버지가 맡았는데…. 그거 만들어서 얼마 되지 않아 서북청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