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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애월면 3. 구엄리 구엄리는 해방 직후부터 마을 유지였던 문영백의 영향으로 우익활동이 왕성했 던 마을이다. 청년들은 지서 보조원으로 대거 활동하기도 하고, 경찰에 투신해 4·3의 진압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런 관계로 좌익단체에서는 구엄리를 주목했다. 1947년 3월 1일 제주북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던 3·1운동 기념식에 구엄리 청년들이 참가하지 않았다고 하여 타 지역 활동가들이 구엄리 사람들을 집단구타 하는 사건도 있었다. 1948년 4월 3일, 4·3무장봉기가 일어났다. 무장대는 구엄 우익인사 문영백과 고군칠, 강성종, 문용준의 집을 표적삼았다. 이날 마을 안에서 문용준(26, 남)은 동생이 애월지서 경찰이라는 이유로 무장대에게 구타를 당했고(그는 3일 후 사망 함), 조매선(58, 여)은 아들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집을 습격한 무장대에 살해됐다. 또 송영호(44, 남)는 집에 불을 지르는 무장대에게 저항했다가 죽창에 찔려 부상 을 당했다(그는 그 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감). 문기찬(31, 남, 조매선 아들)과 문창순(31, 남)은 외도지서에 지원을 요청하러 가다 하귀1구 비석거리에서 매복 했던 무장대에 피살됐다. 이어 무장대는 신엄지서를 기습했다. 그 후 얼마간 마을에서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1948년 12월 19일, 무장대가 구엄리를 대대적으로 기습했다. 이날 무장대는 우익인사뿐만 아니라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