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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025년 4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1912년 4월 봄이 되었다. 춥고 황량한 망명지 만주(중국 동북지방) 땅에도 봄이 온 것이다. 서럽고 고달픈 타지살이에서 여전히 가족들 의  병치레는 지속되었지만, 다시 봄이 왔으니 백하 김대락의 가족은 농사를 준비해야만 하였다. 한편으로는 새로 돋아나는 고 마 운 봄나물을 맛보기도 하면서 백하는 만주에 정착한 후 처음으로 긴 나들이를 하게 된다.  김대락의 백하일기 ⑯ 사돈 황호 등과 교류하며 부근 탐방 등 소일 이시영·이회영·이계동 등 독립운동가들과 교류 서간도 이주 어려움 속에서도 봄을 맞이하여 분주히 활동 글 최진홍(월간 『순국』 편집위원) 4월 5일 사돈 황호가 백하의 집으로 방문하였다. 백하가 조국을 떠날 때 평해(경북 울진) 사동으로 시 집간 만삭의 손녀도 함께 망명길에 올랐었다. 후손 을 식민지 땅에서 낳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러한 백하의 결단은 평해의 사돈 황씨 문중에 영향 을 끼쳤다. 황교영, 황도영, 황동영, 황만영, 황호 등 황씨 가 문의 사람들이 만주로 망명을 하게 되는데, 황호는 바로 백하의 손녀 사위인 황병일의 작은 할아버지이 다. 그리고 황만영은 백하의 손자 김정로의 장인이 되어 두 집안은 겹사돈 관계였다. 당시 경상도 지역은 오랜 학맥과 혼맥으로 이어 져 있었다. 주지하듯이 백하와 석주(이상룡)는 처남 매부간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정재학파의 문도 (門 徒)들이었다. 정재학파란 정재 유치명(定齋 柳致明, 1777~1861)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이다. 1895년 을미왜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1896 년 청송의진(靑松義陣)이 조직되었는데, 당시 의병지 도부의 상당수가 유치명의 문인으로 구성되었다. 이 후 1910년에 조국이 사라지자 정재학파의 문도들이 대거 만주로 망명길을 택했던 것이다. 4월 5일 백하의 집을 찾아와서 하룻밤을 자고 간 황호가 15일에 다시 와서 또다시 하루를 묵고 이튿 날 백하와 함께 길을 떠났다. 손자도 볼 겸 소풍삼 아 길을 떠났다는 소회를 남긴 백하는 이회영의 집 을 방문하고, 조만기의 집을 거쳐 황호의 집으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