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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축성을 할 때도 조를 편성하여 조별 부역구간을 맡김으로서 경쟁심을 이용하여 조기 축성을 할 수가 있었다. 처음 축성한 것은 얕다고 하여 3번씩이나 다시 올려 쌓는 작업을 했다. 또 성 밖으로 외줄로 담을 쌓아서 가시낭(나무)을 베어다가 속 을 채워서 성담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우리 부락에는 폭도 침입이 한 건도 없었다.” (송계수의 자료) 양윤관(1928년생, 남)의 증언이다. “성담은 상동과 중동을 함께 둘렀다. 하동은 따로 쌓았다. 한번 탈산봉에 봉화가 오르자, 보초를 세웠다. 3~4년 동안 보초를 섰을 것이다. 봉화는 대록산에서 시작했다. 당시 고기잡을 때 만들어 쓰던 수류탄 인데 ‘범벅이’란 것이 있었다. 그것을 보초 설 때 만들어 사용했다. 표선에 군인이 주둔하고 우리 마을은 신용이 좋아서 군인 5명이 순환하며 관리를 했다. 경찰은 2명이 출퇴근했다. 2연대였던 민중사와 최상사는 하천리 여자와 결혼까지 했다. 당시 면사무소에는 1개 소대가 주둔했다. 성담의 높이는 너발 정도였다.” 현봉찬 (1949년생, 남)의 증언이다. “하천리는 태산봉이 있어서 습격이 안 들었던 마을 이다. 성담은 신풍리 다리에서 하천리 하동까지 쌓았다. 서쪽은 흰동산까지만 쌓 았고, 그 밑으로는 안 쌓았다. 하천리 757번지에 성담이 있었으나 천미천 정비사 업 당시 소실되었다. 성문은 신풍리 가는 다리 있는 곳, 화석박물관 남쪽 정자 있 는 곳, 흰동산, 태산봉 가는 곳 4군데에 있었다. 현재 4·3성담이 남아 있는 곳이 없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하천리 4·3희생자는 강귀종(29, 남)과 강응삼(19, 남) 등 4 명(남 4명)이다. 1) 추모공간 - 표선면 4·3추모공원 가. 소재지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1832-4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