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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 표선면 현재 정부가 인정한 세화리의 4·3희생자는 모두 45명(남 40명, 여 5명)이다. 1) 주둔지 – 세화 1구 경찰파견소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표선면 세성로 277번길 6 (세화리 1161-2번지) 나. 개요 이곳은 당시 세화 1구 향사였다. 원래 이곳에는 1930년 9월에 문을 열어 세화리 교육을 담당했던 서당이 있었 다. 당시 학동 몇이 성읍보통학교를 다녔으나 거리도 멀고 더 많은 아이들이 교육 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에 현태규가 중심돼 마을에 서당을 설립했던 것이다. 그러던 1940년, 서당은 폐쇄되고 그 후 마을에서 이곳을 향사(리사무소) 로 사용했다. 4·3 시기, 이곳 파견소는 표선지서 관할로 경찰 3~4명과 응원대 10여 명이 주 둔했다. 응원대는 많을 때는 15명가량 되기도 했다. 경찰이 언제부터 이곳에 주 둔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주민들은 강화동이 소개돼 본동과 합쳐 살게 되 면서 설치됐을 것이라 증언했다. 그 후 이곳엔 충남부대도 주둔하며 산으로 토벌 을 다녔다. 주민들은 주둔한 경찰들의 치다꺼리로 항상 애를 먹었다. 김길호(2002년 79세, 남)는 “파견소 주임은 여기도 주둔하고 성읍리에도 주둔했었지. 우리는 그를 닭주 임이라 불렀어. 한 반에 몇 마리씩 해서 닭을 잡아간 거야. 많이 가져다 먹어서 그 런 별명이 붙은 거라. 그리고 저 위로 가면 소들, 주민들이 내버리고 도망가니까 그거 끌어다 먹이고” 하며, 힘들었던 당시를 기억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추운 겨 울, 난방을 위해 피워놓은 불씨가 옮겨 초소에 불이나자 담당자가 파견소로 불려 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오신생이 그 당사자이다. 그는, “이디 순경이 오란에 주둔 헐 때라. 보초서는 아이덜이 그만 초소를 불캐와불었어. 뒷날은 내가 불려간 고통 을 받았지. 경비를 잘 못했다고, 근무허는 아이덜 감시를 잘 못 했다고” 하며, 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