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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 제주4·3유적 Ⅰ_ 제주시편 학을 개설하였다. 하귀 1, 2구 두 곳에 각각 야학소를 운영하였으며 애국심과 신 학문에의 동경을 안고 모여든 학생이 근 백 여명에 달했으니 그 열기를 충분히 짐 작할 수 있다 하겠다. 그 정열은 만세운동으로 번졌으니 1935년 봄(5월 5일) 야학 생 80여명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관전동에서 미수샘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다 왜경에 강제진압을 당하고 20여명이 외도주재소에 끌려가게 되 었다. 그 과정에서 위 네 분 외에 강경생, 강창선, 김을봉, 고붕익, 양군삼, 양군칠 선 생 등 10여명이 제주경찰서에 이송되었고 이어서 목포지청에까지 끌려가면서 선 각자의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그 중 강문일, 박영순, 김홍규 세 분은 목포에서의 1심 재판과 대구에서의 2심 재판을 거치면서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 고받았다. 이토록 자랑스러운 투쟁의 기억과 기록이 뚜렷하고 분명하건만 해방이 후 파란 많은 정국으로 말미암아 이제야 작은 빗돌 하나를 세우기에 이르렀으니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라 하지 않으랴. 열사들의 후손 우리들 모두 새삼 옷깃을 여미며 이 자리에 섰으니 피끓은 그 분들의 목소리가 지금인 듯 들려오지 않는가. 그 날의 교훈이 이토록 생생하니 고향을 사랑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청소년들이라 면 이 작은 빗돌이 그분들을 기리는 마음의 끝이 아니라 작은 시작임을 다짐해야 만 하리라. ③ <護國英靈 忠義碑> <전면> 護國英靈 忠 義 碑 <측면> 陸軍 少領 康大鉉 一中 金容彦 高南浩 梁漢? 李雲成 裵南植 二中 裵萬石 姜宗一 秦碩日 下士 梁榮雨 康日煥 全崙弘 高昌謹 金祥賢 金善潭 徐己南 文藏盛 姜吉宋 호국영령 충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