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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인들이 포위했다. 그러고는 끌고가 바로 면사무소 앞 유치장에 담았다. 그 후 몇 사람씩 호명해 나가면 돌아오지 않았다. 나도 아침에 지서 뒤로 불려갔다. 나 혼 자 죽이려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뭐 하러 왔냐고 물어보곤 그냥 돌려보냈다. 유 치장에서 이틀 있는 동안 물 한잔 안 주고 배고프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사흘째 밤에 연대장이 연설한다고 해서 그 연설 후에 석방됐다. 그때 20명쯤 죽었을 것 이다” 하며, 치를 떨었다. 해안마을인 세화 2구는 1948년 12월 4일, 무장대 피습으로 고승열(48, 남)을 비롯한 7명이 살해됐고, 가옥 일부가 소실됐다. 이 사건 후 주민들은 경찰의 지시 에 따라 본동과 가마리를 두르는 축성작업에 나섰고, 자경대를 조직해 마을 경비 도 섰다. 한편 세화 1구 본동과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강화동 피난민들은 5년 후 마을 복구가 허용돼 고향으로 돌아왔다. 세화리의 주요 주민학살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6일: 무장대가 식량 요구를 거부한 현응대(37, 남)를 살해함 12월 4일: 세화 2구를 습격한 무장대에게 고승열(48, 남)을 비롯한 고승 지(39), 김동곤(45), 문해생(24, 여), 함관일(51), 함두옥(23), 현여표(58, 여) 7명이 피살됨 12월 17일: 토벌대가 토벌을 간다며 세화 1구 청년 30여 명을 집합시킨 뒤 표선리 군부대 수용소로 끌고가 수용했다 고태후(34, 남)를 비 롯한 강문형(25), 강안흥(30), 김동현(22), 김사현(20), 김수열 (24), 김인하(24), 정지명(25), 최군천(18), 현계만(29), 현기순 (20), 현봉준(27), 현응삼(37), 현인봉(19), 현태호(23) 15명을 표선리 한모살에서 총살함 (표선리-학살터-한모살, 참조) 1949년 1월 3일: 세화 1구를 습격한 무장대가 현태헌(44, 남, 민보단장)을 비롯 한 김승준(22), 현철규(47) 3명을 피살하고, 김복순(18, 여)을 납치한 후 살해함 1월 7일: 고태식(28, 남)은 지난해 12월 17일 한모살 총살현장에서 다리 에 총상을 입고 집으로 와 숨었으나 이날 토벌대에 발각돼 동생 고태경(25)·고태욱(19)과 함께 총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