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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제주읍 서로 발족 1946년 8월 1일: 제주도(濟州島)가 제주도(濟州道)로 승격되면서 제8관구 경찰청에 서 분리돼 제주감찰서로 개칭(당시 감찰서는 관할 경찰청과 경찰서의 중간 위치임) 12월 14일: 제주감찰서가 제주감찰청으로 승격(1946. 9. 11. 초대 감찰청장 김대봉)되면서 제주경찰서는 제1구 경찰서, 서귀포지서는 제2구 경찰서로 승격됨. 1구서는 북제주 지역, 2구서는 남제주 지역을 관할 12월 23일: 제주감찰청 청사를 제1구 경찰서 청사에서 제주북교 동측 (구) 제주신문사 옛터(일도1동 1280-13번지)로 이전 1947년 2월 7일: 제주감찰청을 제주경찰감찰청으로 개칭 1948년 1월 8일: 모슬포지서는 제3구 모슬포경찰서, 성산지서는 제4구 성산포경찰 서로 승격. 제1구 경찰서는 제주읍, 애월면, 조천면, 2구서는 서귀면, 중문 면, 남원면, 3구서는 대정면, 안덕면, 한림면(당시 한경면 포함), 4구서는 성 산면, 구좌면, 표선면을 각각 관할 4월 5일: 제주경찰감찰청 내에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 설치 11월 19일: 제주경찰감찰청을 제주도경찰국으로 개칭 1949년 2월 13일: 제1구 경찰서는 제주경찰서, 제2구 경찰서는 서귀포경찰서, 제3 구 경찰서는 모슬포경찰서, 제4구 경찰서는 성산포경찰서로 각각 개칭 1955년 5월 15일: 제주도경찰국이 관덕정의 옛 군정청과 도청, 제주경찰서 자리(삼 도2동 43-2번지)로 청사를 신축하여 이전 1947년 3월 1일, 3·1절 발포사건은 4·3 발발의 도화선이었다. 이날 제주경찰 서(당시 명칭, 제주경찰감찰청 제1구경찰서) 정문과 망루에서 경계를 서던 충남 북 응원경찰의 발포로 시위에 참여하거나 구경하던 주민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곧 도민들은 미군정에게 사건의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 군정은 탄압으로 일관했고, 이 사건은 다음 해 4·3무장봉기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제주경찰서 유치장에는 1947년 총파업 이후 많은 사람들이 수감됐다. 1948년 무장봉기가 발발하고, 그해 말 중산간 마을에서 초토화작전이 벌어질 시기에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