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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 표선면 다. 현황 현재 토산 2리 사무소 바로 뒤에 있는 옛 향사 터는 잡목이 우거진 채 방치돼 있 다. 당시 쌓았던 울타리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토산리의 4·3’이란 내용이 새겨진 안내판을 노인회관 앞쪽에 세웠다. 라. 안내판 토산리의 4·3 토산리는 4·3으로 18세에서 40세까지의 남자들이 몰살당하는 상상조차 할 수 커다란 인명피해를 당했던 마을이다. 1948년 12월 14일, 표선리 주둔 국방경비대 제 9연대 군인들과 민보단원들은 토산리민들을 모두 마을 공회당에 집결시켰다. 토벌대는 18에서 40세까지의 남 자들을 한쪽으로 골라내어 나머지 여자들에게 ‘모두 달을 쳐다보라’고 했다. 그리 고는 젊은 처녀들 몇몇을 끌어내고는 남자들과 함께 표선리 수용소로 끌고 갔다. 그들은 다시 마을로 돌아올 수 없었다. 12월 18일부터 이틀에 걸쳐 남자들이, 일 주일 후에는 끌려간 여자들 중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표선백사장에서 총살당했 다. 한창 나이의 청장년을 모두 잃어버린 부녀자들은 슬픔에 잠길 여유도 없었다. 남아 있는 어린 아이들을 키워내고 마을을 지켜내고자 갖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 다. 이제 그녀들 또한 대부분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 어머니들의 한을 달래고자 2002년 토산리 바닷가에 모자상(母子像)을 세웠다. 한편 1987년 마을 주민들은 「4·3사건 실상기(實狀記)」를 작성해 진상규명에 나서기도 했었다. (이하 영문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