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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 애월면 ④ 가문동 돈지동산 및 원벵듸 가. 소재지 제주시 애월읍 하귀2리 나. 개요 1948년 5월 25일 새벽, 신엄지서 경찰과 대청단원, 서청이 가문동에 들이닥쳤 다. 그들은 가가호호 수색하며 주민 70~80명을 돈지동산에 집결시켰다. 경찰은 한 사람씩 취조했다. 그리고 주민들을 짝 지워 뺨 때리기를 시키거나 싸움을 시키 다 마을 건너 서편 원벵듸에서 주민 세 명을 총살했다. 가문동 젊은이들은 5·10선거 거부 후 경찰이 하귀와 그 인근 마을에서 주민 몇 몇을 총살하자 거의 마을을 떠났었다. 이런 과정에서 이날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에 대해 임찬부(2003년 74세, 남)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5·10선거를 반대하기 위해서는 모두 산으로 가야 된다고 해서 저는 당시 유신동으 로 피신했습니다. 선거가 끝나자 곧 마을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주민 들을 보면 총살한다는 소문도 돌았죠. 그러자 동네 청년들 사이에서는 돛배라도 타서 추자도로 피하자는 의견이 돌았어요. 숨었던 청년들 몇 명이 가문동으로 내려왔죠. 아 마 이런 정보가 경찰에 들어간 모양이에요. 5월 25일 동틀 무렵 신엄지서에 주둔하고 있던 경찰과 서청이 들이닥쳤어요. 이들은 가가호호 수색하며 동네 사람들을 돈지동산 에 다 모이라고 하고는 서로 싸우게 했어요. 이날 임석부, 현을호, 문수택 세 명을 원벵 듸로 끌고가서 총살했습니다. 가문동 첫 희생자죠. 임석부 씨는 원래 광령3리 자종이 사람인데 나무 가지러 산에 갔다 잡혔고, 문수택 씨는 좀 바보스런 분이었어요. 현을호 씨는 말을 길렀는데 서청이 말을 달라고 해도 못 준다고 하자 죽여버린 거예요. 추자도 피신은… 당시 김관수라고 우리 동네 출신자가 거기 살고 있어서 임시로라도 피하자고 해서 배를 마련하고 했던 거죠. 그런데 거기에 갔던 사람들조차 나중에 재검 거되어 제주경찰서로 돌아왔어요. 15명 정도가 잡혀 왔는데 그 중에 희생된 사람은 없 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