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page

80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남자들이 한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끌려가 몰살됐기 때문이다. 당시 이들 희생자 중에는 부자와 부녀, 형제간도 많아 대가 끊기는 집안도 많았다. 그 후 살아남은 웃토산 주민들은 알토산이나 연고가 있는 인근 다른 마을에서 3년의 피난생활을 하다 웃토산을 재건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음은 토산리의 주 요 주민학살사건이다. 1948년 12월 18일: 12월 14일, 표선리에 주둔했던 2연대 군인들이 토산리 주민들 을 향사에 집결시킨 뒤 130여 명을 표선리로 연행해 12월 18 일과 19일, 22일, 27일 네 차례에 걸쳐 125명을 표선리 한모 살에서 학살함 (표선리-학살터-한모살, 참조) 12월 21일: 토벌대가 김봉수(63, 남)를 비롯한 13명을 도피자 가족이라며 토산리 비석거리에서 공개총살함 (아래 학살터-비석거리, 참조) 토산리는 소개하고 3년이 지난 후 1리와 2리에 별도로 성을 쌓고 마을을 복구 했다. 토산 2리 성담은 향사 뒤쪽 삼거리를 지나며 150m 정도 둘렀다. 현재 성담 흔적이 토산리 525번지에 조금 남아 있는데 성은 높이가 5m 정도로 높았고, 회 곽식으로 쌓았다 한다. 성 밖에는 2m 깊이의 호를 파서 함정을 만들기도 했다. 당 시 주민들은 성담을 쌓으려 푸지게로 돌을 지고 나르며 많은 고층을 겪었다. 향사에 설치된 경찰파견소는 자체적으로 성담을 둘렀고, 소나무 사다리를 만들 고 올라가서 보초를 섰다. 망루도 있었다. 성안에 보초막이 8군데 있었고, 보초막 을 지키는 보초한테는 나이를 불문하고 어린 아이들에게도 총 1정, 수류탄 2개, 탄알 20개가 지급됐다. 마을에 남자들이 별로 없다보니 성담이며 파견소 보초를 서랴, 마을의 온갖 일을 하랴 여성들이 큰 고생을 했다. 당시 경찰파견소에는 경찰이 10명 정도 근무했다. 서북 출신 경찰이 꽤 돼 피해 가 많았다. 위미리 출신 강소장은 아주 악독했다. 토산리의 마지막 파견소장은 박 만석 소장이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토산리 4·3희생자는 모두 171명(남 125명, 여 4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