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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2025년 5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마디만 나누었는데도 매천의 깐깐한 성품까지 그대 로 빼닮은 듯,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 분 같지 않았 다. 어딘가 매천 후손으로서의 자존이 물씬 배어 있 는 듯하였다. 곧 순천대학교 홍영기 교수가 도착했다. 홍 교수 는 막 구례에서 오는 길이라고, 당신 집(문전재)이 구 례군 마산면 사도리로 매천사와 이웃이라는 말에 황 선생은 당신 고향집 이웃으로 그제야 온 얼굴에 반 색을 띠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듯 했다. 홍 교수는 매천을 흠모하던 나머지, 당신도 매천처럼 구례에다 서실을 마련하여 역사공부를 하는 듯 했다. 우리 세 사람은 그제야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매천 후손과 전문 학자를 앞에 모셨으니 더 이상 바랄게 있으랴. 나는 매천야록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을 질문했다. 『매천야록』에 보면 국내 소식은 물론, 미국 · 이태 리 · 러시아를 비롯한 구미 각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한 점이 매우 궁금하였다. 100년 전인 그 무렵에는 오지 중의 오 지인 구례 산골에는 인터넷은 물론 방송도, 전화도 없을 텐데 말이다. 두 분 답은 매천 선생은 구례에서 신문(주로 대한매일신보)과 관보를 받아보았을 뿐 아니라, 서울이나 중국에 있는 친구 이건창이나 강 위, 김택영 선생의 편지 등으로 세상 돌아가는 정보 를 수집하였다는 답을 들었다. 매천의 위대한 점은 그 글에 따른 처신과 책임감 을 다한 점이다. 흔히 글 쓰는 이들의 단점은 글 따로 행동 따로 언행불일치인데, 매천도 살아서는 이 점 을 매우 부끄러워하며 마지막 절명시에서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렵구나(難作人間識字人)”라는 경구를 남 기고 순절한 일이다. 두 분 모두 매천에 관해서는 모 르는 게 없기에 자연히 이런 얘기들이 화제의 초점 이 되었다. 그런 매천도 삼년 뒤에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 恥)를 당하고는 더 이상 ‘글만 아는 선비’가 될 수만 은 없어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순국한 녹천의 뒤 를 따라 자결로 순절하였다.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새와 짐승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이 나라 가 망하고 말았구나. 秋 鐙 揜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천고 옛일 돌아보니 황현의 다른 유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