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9page
801 애월면 ② 소승내 서쪽밭 가. 소재지 제주시 애월읍 하귀2리 나. 개요 소승내 서쪽밭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은 1949년 초였다. 유수암리(금덕 리) 출신으로 하귀리로 소개왔던 강조순(17, 여)이 이곳에서 희생됐다. 강조순은 11월 18일 토벌대가 소개령을 내리자 하귀1구로 내려온 뒤 여자 한청단에 들어 가 활동했다. 1949년 초, 소개 당시 함께 오지 않았던 오빠 강조정(21, 남)이 붙 잡히자, 강조순은 하귀지서로 연행됐다. 소개하기 전 양말을 강조정에게 만들어 줬다는 게 이유였다. 원래 하귀지서는 이 사건이 있기 얼마 전인 1949년 1월 30일에 설립됐었다. 하 귀지서는 설립 직후 특공대를 관리하고 대한청년단을 훈련했다. 특공대는 민보단 이나 한청 단원 중 젊은이 20명 정도를 차출해 경찰의 지시를 받아 경비를 서거 나 순찰활동을 했다. 하귀지서는 또한 젊은 여성들을 1~2기에 걸쳐 각 100명씩 뽑아 여자한청단을 만들어 철창이나 목총을 지급하여 매일 훈련하고 보초 근무를 서도록 했다. 한편, 하귀지서에서 겁탈당할 뻔했던 강조순은 한 경찰의 도움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강조순은 며칠 동안 숨어지내다 다시 경찰에 붙잡혔다. 하귀지서 경찰은 남녀 한청단원들을 소승내 서쪽밭에 집합하도록 한 뒤 강조순을 끌어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하귀1구 출신인 김계순(1999년 68세, 여)이 당시의 끔찍했던 상 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4·3 발발 이듬해 봄으로 기억되는데, 금덕리에서 소개온 한 처녀가 하귀지서에 끌 려와 매일 전기고문을 받았어요. 그녀의 오빠가 육지형무소로 갔다는 게 빌미였지요. 그녀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몰래 도망쳐 바닷가에 숨었습니다. 9일간이나 바닷가에 숨 어 ‘넘피’를 뜯어먹으며 버텼지만 결국 경찰에 붙잡혔지요. 경찰들은 하귀국교 동녘 밭 에 남녀 대한청년단을 모두 집합시킨 후 그녀를 끌고 왔습니다. 그땐 너나 할 것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