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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 애월면 나. 개요 개수동 비학동산 앞밭에서는 1948년 12월 10일 경찰이 개수동 주민과 소개민 들을 모아 놓고 그 중 36명을 학살했다. 이곳의 학살 경위는 다음과 같다. 경찰은 1948년 12월 초 개수동 청년들에게 자수하라는 통보를 보냈다. 무슨 근 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마을에 있던 청년 10명의 이름을 지목해 자수하면 무사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마을 전체가 크게 당할 것이라는 통보였다. 이에 마을 청년들과 유지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주민들은 경찰을 믿을 수 없었다. 며칠 전 장작사건으로 외도지서에 갔던 청년들도 실려가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지목된 청년 중 한 명인 김호중(25, 남) 이 “내가 출두하겠다. 내가 무사하면 경찰의 약속이 증명되는 것이니 그때 자수하 라” 하고, 홀로 외도지서로 갔다. 김호중은 12월 7일, 외도리 절뒤에서 다른 하귀 리 주민 강창선(34, 남)과 함께 총살됐다. 그 후의 상황은 고창선(남, 2003년 69세)이 증언했다. “김호중 씨 부인이 나에게 말했어요. ‘남편이 지서로 갔더니 경찰이 다른 사람들도 설 득해서 데리고 와라. 그렇지 못하면 너만이라도 오라고 했다’고 말이죠. 김호중은 결국 아무도 못 데리고 혼자만 지서로 가야 했어요. 그런 김호중을 경찰은 12월 7일 총살하 고 개수동에 대한 소탕령을 내렸죠. 그날(12월 10일) 아침 개수동 사람들을 죽일 것이니 미리 대처하라는 연락을 받긴 받았어요. 그러나 우물쭈물하는 사이 군인과 경찰이 합동으로 아침 9시경에 마을을 포 위하고 들어왔죠. 토벌대는 비학동산에 사람들을 다 모아 놓고 우선 도피자 가족들 전 부 나오라고 했어요. 이때 김호중은 이미 죽었는데 73세 된 그 부친은 아들이 없으니까 나갔죠. 이런 경우에는 토벌대에서도 전후사정을 알아보고 해야 하는데 무조건 쏘아 죽였어요. 어느 누구라도 그분은 아들이 먼저 죽었다고 말을 해주었다면 살았을 건 데…. 이날 도피자 가족 집들은 다 불태워졌고, 소개민을 포함해 36명(개수동 출신 31 명)이 총살당했어요. 토벌대는 10시경부터 선별한 주민들을 앞밭으로 몰아넣고 총살 한 후 1시경에는 집들을 불태웠죠. 그때 사람들을 죽인 장소가 현재 동민회관 바로 앞 밭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