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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 애월면 12월 12일: 김용숙(24, 남) 등 7명이 외도지서로 연행됐다 하귀리 붉은질 에서 총살됨 12월 23일: 장재반(28, 남) 3형제 등 4명이 외도지서에 땔감일로 동원됐다 가 행방불명됨 12월 28일: 12월 24일 군인들이 주민들을 하귀리 공회당과 하귀국민학교 로 집합시킨 뒤 하귀1리 27명, 하귀2리 50여 명을 연행하고, 이날 신엄리 자운당에서 학살함. 현재 확인된 하귀리 희생자는 강봉환(14, 남) 등 26명임 (신엄리–학살터– 자운당-2, 참조) 한편, 토벌대가 탄압의 강도를 높이던 1948년 12월 31일, 이번에는 무장대가 하귀리를 기습했다. 무장대는 국민학교와 향사,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던 강명수 댁 등 민가 4~5채를 불태웠다. 이날 무장대는 개수동의 민보단장이었던 고승천 (56, 남), 문무생(52, 여) 부부와 보초를 서던 김용학(34, 남), 김을출(46, 남)을 학 살했다. 이 사건 후 개수동 주민들은 미수동 등지로 소개를 해야 했다. 1949년에 들어선 후에도 하귀리 주민 희생은 계속됐다. 1949년 1월 3일: 무장대원 혐의를 받는 김두호를 연행하려던 외도지서 경찰이 고경선(44, 남)을 잘못 총살하는 사건이 벌어짐. 아명이 고두호 였던 고경선은 밭에서 일을 하다 경찰이 ‘두호!’라고 부르는 소 리에 돌아봤다 변을 당함 1월 22일: 김정(61, 여)의 세 모녀가 아들 김봉희(39, 남)의 행방을 추궁당 하며 끌려다니다 총살됨 1월 24일: 이날, 3건의 사건이 발생함. 먼저 강재정(47, 여)과 손현(51, 여) 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마을 안에서 총살됨. 그리고 강재 생(29, 여) 등 6명도 도피자 가족이라며 외도지서로 연행됐다 외도지서 서쪽밭에서 총살됨. (외도동–학살터–외도지서 서쪽 밭, 참조) 마지막으로 강계효(67, 남) 등 일가족 4명이 외도지서 로 끌려가던 중 하귀1구 속칭 밋머들동산에서 경찰에 총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