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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제주읍 에 잡혀온 주민들은 학살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즈음, 제주지역 많은 유지들이 이곳에 끌려갔다. 이들 중 현경호, 김원중, 배두봉, 이상희, 현두황 등 6명은 12월 23일 박성내 부근 말방앗간에서 총살됐다. 1948년 12월 29일, 2연대가 교체해 들어온 뒤에도 이곳 천막수용소에는 검거 된 주민들로 넘쳐났다. 그러던 1949년 3월 이후에는 소개를 피해 산으로 피난했 던 주민들이 대거 귀순하면서 이곳에 수용돼 대대적인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 서 무수한 폭행과 고문이 자행됐고, 일부 주민들은 매가 무서워 엉터리 자백을 했 다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그 후 이들은 타지방 형무소로 보내졌고 한국전쟁 후 집 단학살되기도 했다. 다. 현황 제주농업학교는 제주고로 개명됐고 학교도 노형동으로 옮겨졌다. 학교건물이 있던 옛터에는 한국토지공사 제주지사가 들어섰다. 운동장이 있던 곳은 주택가로 변해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이곳에는 교육청 산하기관인 제주국제교육 정보원, 외국어학습센터, ICT교육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농업학교 옛터에는 1972년에 건립된 학교이전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농업학교 천막수용소(194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