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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서귀면 생물도 주둔지는 이 추억의 숲길 중 삶의 흔적터 북북동쪽 언덕에 두 개의 망루 를 만들고, 그 뒤로 주둔지를 축성해 조성됐다. 이곳에 주둔한 경찰들은 1948년 하반기에 제주도로 이동한 응원경찰들로 추정된다. 이들 경찰 수색에는 한라산 지리에 밝은 사냥꾼이 길라잡이로 동행해 멀리는 한라산 1,700m 고지 남벽 앞까 지 갔다 한다. 서호동 고삼진(1934년생)은, “나는 열다섯 되던 1948년부터 1951년까지 3년을 서홍동 마을회의 서기로 일했다. 당시 응원경찰이 생물도에 주둔했다. 이들은 축성 을 위해 서홍은 물론 동홍 주민들을 반별로 동원해 20여 일 쌓았다. 그 시기가 소개 령 내린 다음 해 봄이니 1949년 봄쯤이다. 나도 마을 서기로 연락할 일이 있으면 주 둔소에 가곤 했다. 중학교 3~4학년 학생들은 토벌대 학련단이 되어 완장차고 거기 가서 총이나 죽창을 들고 보초를 서기도 했다. 경찰은 60~70명 정도 주둔했고, 이 들이 교대로 토벌 나가고 나면 보통 20명 정도는 항상 주둔소에 남아 있었다. 응원 경찰들은 6·25 전에 철수한 걸로 알고 있다. 마을에서는 먹을 것을 장만해 가져갔 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목숨을 부지하고, 마을을 지켜내려면 없는 살림에 먹을 것을 조금이라도 더 보태야 했다. 특히 구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경찰들에게 더 협조를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한상봉, 『제주4·3 시기 군·경주둔소』, 2018, 55쪽) 생물도 응원경찰 주둔소 흔적(사진 한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