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7page
789 애월면 나. 개요 애월면사무소는 4·3 시기 본청 외에 회의실과 민원실로 사용되던 별채 2동이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현재는 개·보수돼 애월리 복지회관으로 이용 되고 있다. 곽지 출신 진철호 면장 당시 해방을 맞이했으며, 이곳은 그 직후 제주 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인민위원회 간판이 걸리기도 했다. 일제 때 애월면 직원으로 근무했던 김아무개는 해방 후 이곳에서 인민재판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나와 진철호 면장이 인민재판을 받았어요. 일제 때 내가 병사주임을 했기 때문에 그 랬을 겁니다. 그때가 12월 15일경인데 나보고 와달라고 해서 면사무소로 갔죠. 해방되 고 인민위원회가 생긴 때라 무슨 기관이다 하면서 모두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뭐 인민위원회의 직책이죠. 난 공식적으로 소환 받은 겁니다. 한 3일간 이것저것 물어 보고, 장부가 다 있으니 장부검사도 하면서 취조를 받았어요. 아주 시달렸죠. 옛 애월면 사무소 별채에 회의실이 있었는데… 그 회의실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취조도 하고 했 어요. 결국 이리저리 조사하다 제 죄로 판명 난 것은 장부상으로 단 돈 일원이 틀렸다 는 거였어요. 제가 그 돈을 횡령했다는 거죠. 사실… 제 죄는 그 문제보다는 민족을 배 반하여 친일파 행동을 했다 이거였어요.” 해방 후 혼란기를 거치며 애월면 면사무소에 걸렸던 인민위원회 간판은 어느 순 간 없어졌다. 인민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잡혀가거나 도피했다. 애월면사무소 별채 회의실은 1946년 가을 애월중학원이 설립되자 교사(校舍) 가 없던 중학원의 교사로 이용돼 학생들의 배움터가 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예비검속자 2~30여 명이 회의실에 1개월가량 수용됐다. 다행히 이들은 그 후 무사히 석방됐다. 그러나 같은 애월 출신 예비검속자 중에서도 면사무소에 수감되지 않고 바로 제주시로 이송됐던 사람들은 학살된 채 현재 행방불명자로 남아 있다. 그들은 김두희(32, 남), 김주담(34, 남), 문창래(72, 남), 문창래의 아내 (연령미상, 여), 문창연(45, 남), 박중석(23, 남, 애월중학교 교사), 이병근(44, 남, 애월리 구장), 이시형(33, 남, 제주농업학교 교사), 이한익(27, 남, 애월중학교 교 사), 이한형(20, 남), 장기방(35, 남, 민보단 감찰위원장), 장시현(30, 남, 의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