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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 애월면 면서 토벌 나갈 때는 같이 가기도 했습니다. 원래 이 부대의 임무는 공비 토벌이었죠. 흙붉은오름에 일선 부대가 있었는데 거기까지 갔던 적이 있습니다. 이 부대는 3개월 정 도 있다가 광주에 가서 21연대를 창설했습니다.” 다. 현황 애월국민학교는 1996년 애월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2020년 현재 8개 학급, 156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현재 동쪽으로 부지를 확장하여 운동장과 체 육관을 건립했으며, 애월로 15길을 사이에 두고 애월중학교와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② 애월지서 가. 소재지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1595-2번지 나. 개요 애월지서는 일제강점기인 1918년 8월 경찰관주재소로 출발했다. 해방 후 제주 경찰서 애월파출소로 발족, 1946년 3월 15일 제주경찰서 제1구 경찰 애월지서 로 개칭되어 존속하다가 4·3을 맞았다. 1948년 4월 3일 애월지서도 무장대의 습 격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송달호 지서장만이 경상을 입었고, 지서 옆에 있던 대 동청년단(단장 김선희) 사무실이 일부 폭파되었을 뿐 큰 피해는 없었다. 1948년 10월 27일 새벽, 무장대 습격 때에는 순경 1명이 피살되고 무장대원 1명이 부상 을 입었다. 당시 제주도의 다른 지서는 보통 자체 방어를 위해 지서 주위에 돌로 높이 성벽을 쌓고 망루를 설치했는데 애월지서는 특이하게 그런 방어시설을 갖추 지 않았다. 애월지서는 4·3 이후 경찰과 대청단원들이 중산간 마을 토벌작전 후 검거해온 사람들을 수감하고 취조하는 장소로 이용됐다. 1949년 2월 17일, 애월 리 장약국에서 치료를 받던 강순병(29, 남, 어음리)이 고문치사하자, 애월지서 경 찰들이 그의 시신을 애월 남문 서쪽 밭에 유기하는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