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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 표선면 1차 재건 당시 입주한 주민들은 많지 않았으나 성 안에는 민보단 사무실과 경 찰파견소가 들어섰다. 당시 구장은 안흥규였고, 파견소에는 주임 박만석(북한 출 신)과 장문행, 부영빈, 장성순, 강계봉 순경이 근무했다. 이들 중 강계봉 순경은 가 시주민들에게는 좋은 경찰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주민들을 인간적으로 대우 하며 이웃같이 지내려 애썼다. 이를 기려 4·3평화기념관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 같은 의인을 찾습니다> 코너에 강계봉 순경은 의인으로 등재돼 있다. 가시리 본동 4·3성은 가시로 613번길 54 (가시리 1874-2번지)에 소재했었으 나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없다. 성담은 리 사무소 부근에 1차로 쌓고 차츰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동문과 동남문, 남문, 서 문, 북문의 5개의 출입문을 두었다. 가시 리가 발간한 마을지에는 당시 4·3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1 현재 가시마을은 가시리 4·3길을 개통 해 방문자들을 맞고 있다. 주요 현장에는 길을 안내해주는 리본과 안내판이 설치 돼 있어 편하게 현장을 둘러볼 수 있다. 잃어버린 마을 새가름에는 별도의 안내 표지석이 설치돼 있기도 하다. 한편 가시리에서는 2021년 3월 31일, 폭남모루 한 감귤밭에서 시신 3구가 발 굴돼 도민들에게 공개되기도 하였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가시리 4·3희생자는 모두 421명(남 258명, 여 163명) 2 으 로, 가시리는 제주도에서 노형리(538명)와 북촌리(446명)에 이어 세 번째로 희생 자가 많은 마을이다. 1) 가시리, 『가시리誌, 가스름』, 1988, 77쪽. 2) 가시리 주민들은 희생자가 5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가시리 4·3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