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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을 안에서 희생되고, 총 360여 가호 중 250여 가호가 불에 탔다. 그리고 며칠 후, 토벌대는 다시 마을에 들어와 남아 있던 집들을 모두 불태웠다. 그 후 살아남은 주민들은 타다 남은 집에 의지해 움막을 짓거나 인근 야산에 피난처를 마련해 살 았다. 그중 일부는 연고를 찾아 해안마을로 내려가기도 했다. 가시주민들에게는 시련이 그치지 않았다. 마을 주변 야산을 헤매다 붙잡힌 주민들이나 해안마을로 소개갔던 주민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학살됐다. 다음은 1948년 11월 15일 마을이 초토화된 이후 가시리 주민들이 학살된 주요 사건이다.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가 가시리에서 초토화작전을 벌여 강매춘(24, 여)을 비 롯한 29명을 돌렝이모루 등지에서 총살함 (아래 학살터-돌렝 이모루, 참조) 12월 20일: 마을 인근에서 피신생활을 하던 고창운(52, 여)을 비롯한 13명 이 토벌대에 발각돼 총살됨 12월 21일: 가시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지고, 마을 인근에서 피신생활을 하 던 강성부(80, 남)를 비롯한 27명이 토벌대에 발각돼 총살됨 12월 22일: 소개령에 따라 표선리로 소개해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됐던 주 민들 가운데 강덕근(49, 남)을 비롯한 90명이 표선리 버들못 인 근 밭에서 학살됨 (표선리-학살터-버들못 인근 밭, 참조) 1948년 12월~1949년 1월: 가시리 주민 26명이 표선리 한모살에서 총살됨 (표선리-학살 터-한모살, 참조) 2월 1일: 강충효(69, 여)를 비롯한 42명이 표선리 한모살에서 토벌대에 학살됨. 희생자 대부분은 노약자였음 (표선리-학살터-한모살. 참조) 가시주민들은 1949년 5월, 표선면 관내 주민들과 함께(가시리 축성에는 표선 면 관내의 일부 주민들이 강제동원됨) 가시리사무소를 중심으로 마을을 두르는 축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5월 하순께부터 일부 주민들은 성안에 복귀해 집단생활 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