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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도의 일본군 요새를 잘 알고 있었다. 미군정은 그런 그에게 9연대를 확충해 편성 한 11연대의 연대장을 5월 15일자로 맡겨 강력한 토벌작전을 전개하도록 했다. 그 후 11연대장으로 근무한 1달 동안 그는 전에 없는 ‘무차별 검거작전’을 벌였 고, 이에 여기저기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암살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미군정장관 딘 소장이 제주도에 내려왔다. 그는 조속 히 범인을 검거하도록 수사를 지휘하고, 장례를 마치자 직접 박대령의 유해를 서 울로 옮겨갔다. 군수사대는 두 달 후인 7월 12일, 문상길 중위와 8명의 장병을 암 살범으로 지목하고 서울로 압송했다. 그후 문상길을 비롯한 4명은 8월 14일 사 형언도를 받았다. 그 중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9월 23일 경기도 수색의 한 야산에서 총살됐다. ㈁ 천막수용소 농업학교에 9연대본부가 주둔하게 되면서 이곳은 토벌대의 중심기지로 변했다. 9연대는 토벌작전으로 체포한 주민들을 운동장에 임시 마련된 천막수용소에 감 금했다. 1948년 5월부터 9월까지는 체포한 주민들을 이곳에 일시 감금했다가 조 사가 끝나면 대부분 풀어줬다. 그러나 10월 이후 강경진압작전이 시작된 후 이곳 농업학교에서 열린 박진경 연대장 추도식(1948.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