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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애 (당시18세) 부평 공원묘지에 안장 1986년 9월 12일 진흥요업에서 작업 중 화공약품에 의식을 잃고 반신불수 1987년 11월 3일 산재 중앙병원에서 산재없는 세상을 염원하며 투신, 운명 |15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6년 9월 12일 진흥요업(인천 주안동)에서 작업을 하던 중 작업장내의 인체에 해로운 화공약품에 의식을 잃고 기절하여 뇌진탕으로 반신불구가 되어 치료를 받고 있었다. 회사 측에서는 보상은 커녕 동지의 모친과 외숙을 불러놓고 동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졌다며 거짓말로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하였고, 가족을 협박하여 산재처리를 해줄테니 추후 어떤 법적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 도록 강요한 뒤 도장을 찍게 하였다. 인천 산업재할원에 입원 중이던 동지는 이 러한 고통 끝에 꽃다운 18세의 나이에 ’87년 11월 3일 오후 4시 10분경 병원 7층 에서 투신자살하였다. 동지는 죽음을 결단하기 직전에 민정당 총재에게 보낸 진정서에서 당시의 절 박한 심경과 요구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법은만민에게공평하며공정한것이라학교다닐때에배웠습니다. 그리고또우리나라는 법치국가라고배웠습니다. 세상에이런법도다있습니까? 피진정인은악조건의작업환경을철저하게위장내지는은폐하기위해무지몽매한본진정 인의모친과외숙을데려다놓고이사건은공상이아니기때문에공상처리를해줄수가없으 니가뜩이나없는사람들이자비로서치료하겠느냐고잔뜩겁을주어합의각서에서명날인토 록강요하였으며추후법망에서빠져나가기위해변호사까지동원한것입니다.<중략> 못배우고 없이 사는 것도 억울한데 이와 같은 악조건을 약점 잡아 자기들의 비리를 감추고 또한 부를 축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이, 우리를 인간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와같은짓은못했을것입니다.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회사의 배려가 고맙기까지 하더라는 진정인의 모친과 외숙의 순박한 말씀이소녀의가슴을더욱미어지게하였습니다.’ - 투신직전민정당총재에게보낸진성서중에서- 끝내살리라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