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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 애월면 1. 애월리 애월리는 일제강점기부터 면사무소와 지서, 교육기관이 모여 있던 애월면의 중 심지였다. 해방 직후 제주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애월면사무소에도 잠시 인민위원회 간판이 걸려 있기도 했다. 4·3이 발발한 후에는 토벌 근거지(애월국 민학교에는 1949년 2월부터 제6여단 독립대대가 주둔했음)가 되어 무장대의 습 격은 별로 받지 않았다. 그러나 1948년 11월 중순 이후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 화작전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이웃한 중산간 마을의 많은 주민들이 소개와 생 활했다. 그 결과, 애월리는 가끔 이들 소개민들의 학살터가 되기도 했다. 4·3 시기 애월 주민들에 대한 집단학살은 없었다. 그러나 애월 주민들 역시 4·3 기간 내내 한 두 사람씩 끊임없이 희생됐다. 그 첫 희생은 양창돈(19, 남)이었다. 금융조합에 근무하고 있었던 그는 1948년 5월 25일, 이유도 모른 채 애월지서로 연행된 뒤 신엄리 자운당에서 총살됐다. (신엄리–학살터–자운당-2, 참조) 그 후 애월 주민들에게 일어난 학살사건을 정리해보자. 1948년 5월: 쌀배급소를 운영하던 문관택(29, 남)이 애월지서로 연행됐다 풀 려났으나 계속되는 연행과 고문으로 1949년 3월 31일 사망함 10월 31일: 제주읍 삼도리에 거주하던 이관석(47, 남, 제주중학교 교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