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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제주읍 한 정치적·군사적 장소였다. 먼저 이곳에서는 1945년 9월 23일, 제주도건국준비 위원회(위원장 오대진) 결성식이 열려 도민들에게 새로운 정치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그 며칠 후인 1945년 9월 28일에는 미군 항복접수팀(단장 그린 대령)이 내도해 일본 제58군 사령관 도야마 노보루 중장, 제주도사 센베이 센다와 항복조 인식을 가졌다. 그 후 11월 9일에는 제59 군정중대가 내도해 이곳에 주둔했다. 4·3 시기에는 9연대를 필두로 11연대, 2연대 본부가 순차적으로 주둔하면서 4·3 토벌작전의 지휘소 역할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많은 농업학교 학생들이 항일운동에 헌신했다. 해방정국에서는 미 군정의 실정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고, 1947년 3·1절 만세시위에도 주도적으로 참 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학생들의 사회 참여는 1948년 말에 이르면 ‘농업학교 학생 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목숨이 위태로운 좋지 않은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제주농업학교에서는 1945년 10월 20일 최계순이 교장 업무대행으로 발령된 후, 정부수립 후인 1948년 9월 8일까지 다음과 같은 교직원들이 근무했다. 5 1945년: 양을, 한병택, 송양권, 김영길, 최봉순(교유, 혹은 교원촉탁), 송임생, 김영찬 (서기), 김순환, 양의선, 이선행, 강창우, 강제선(교유) 1946년: 임승원, 김학림, 김계용, 정이환, 고봉식, 한상용, 김창국, 오승진, 양동규, 현 인홍(교유), 최계순(교장), 고성춘, 박중흠(교유), 강창수, 문재순, 김창순(교원) 1947년: 이석두, 강계순, 장용직, 이방택, 김두은(교사) 1948년: 김만수(준교사), 정영(교사), 우덕제(3대 교장), 강계순(교감), 이만흥(교사), 고원근, 김광택(준교사), 장종량, 우성오(준교사), 김석두(교사) 제주농업학교에서는 4·3 시기 다음과 같은 큰 사건과 시설이 있었다. ㈀ 박진경연대장 암살 1948년 6월 18일 새벽, 제11연대 박진경 연대장이 숙소에서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장교로 제주도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제주 5) 제주고등학교총동창회, 『제주고 백년사Ⅰ』, 2011, 220쪽. ( ) 안은 발령받을 당시 직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