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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⑱ 77 1945년 경북 구미 출생으로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30여 년 교사생활과 함께 작가, 시민기자로 지냈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 치악산 밑에서 창작일에 전념하 고 있으며 광복회 고문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 『허형식 장군』, 산문집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 『항일유적답사기』 · 『누가 이 나라를 지켰 을 까』 · 『영웅 안중근』 · 『대한민국 대통령』 등이 있다. 이밖에도 사진집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 · 『개화기와 대한 제국』 · 『일제강점기』 · 『미군정 3년사』 ·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과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 『평화와 인권의 대통령, 김대중』 등이 있다. 필자 박 도 (문) 그러면 왜 군사를 해산하고 숨어서 다녔는가? (답) 시세가 불리함으로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문) 스스로 의사요, 충신이라 하면서 일이 되지 않 을 줄 알면 죽을 뿐인데, 왜 구구히 살아서 이런 욕 을 보는가? (답) 네 놈들이 어찌 내가 죽지 않는 까닭을 알겠느 냐? 옛날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여섯 차례나 기산 으로 나아가 싸웠고, 강유(姜維)가 아홉 차례 중원 을 친 것도 모두 성공 못할 줄 알면서도 강행한 것 이다. 비록 성공 못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노력 하여 죽은 뒤에야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당당한 국사(國士)로 후일 광복을 꾀하지 않고, 어 찌 스스로 죽을 수 있겠느냐? (문) ‘창의록(倡義錄)’을 장황하게 저술한 것은 무 슨 소용이 있어 그랬으며, ‘불망록(不忘錄)’은 무슨  의미가 있어 그렇게 수다하게 적었는가? (답) 창의록은 충분(忠憤 충의로 생긴 분한 마음)을  못 이겨 그렇게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또 그것을 너 희 정부에 전달하려 했던 것이요, 불망록은 내가  거사한 지 오륙년에 친구들에게 많은 보조를 받았 으므로 후일 갚고자 기록했던 것이다. (문) 최후로 자기에게 이익이 될 말이 있으면 진 술 하라. (답) 내가 이제 포로가 되었으니 빨리 죽여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무슨 자신을 유리하게 할 말이 있 겠느냐? 다만 한이 되는 바는 이등박문이 안중근 의 손에 죽었는데 나는 사내정의(寺內正毅, 데라우 치 마사다케 조선총독 - 필자)를 못 죽인 것과 우 리나라의 오적(五賊)과 칠적(七賊)을 못 죽이고 또  동경(東京)과 대판(大阪)에 불을 지르지 못한 것뿐 이다. (재판장) 선고를 내릴 터이니 기립하라. (이석용) 기립은 경의를 표하는 것인데, 나는 원수 에 대해 경의를 표할 수 없다. 이때 강제로 일으켜 세우니 이석용은 크게 노하며 “나의 마음은 불기(不起 일어나지 않음)다”고 하자 재판장은 그대로 사형을 선고하고 나갔다. 이석용 은 1914년 4월 4일 37세의 혈혈 청년으로 대구형무 소에서 교수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 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