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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나. 개요 조사팀은 우도에서 이봉춘(89세, 1929년, 여)을 만났다. 그는 4·3 희생자 차두 옥의 손주 며느리다. 그가 증언했다. “시아버지 차두옥은 당시 연평리 구장을 맡 고 있었다. 1947년 3·1대책 연평리 위원장도 맡았다. 경찰관을 비난하는 성명서 를 작성하였다는 이유로 구금됐다. 시아버지는 우도지서(지서장 변영빈)에 끌려 가 일주일 동안 취조 받다 1949년 1월 21일 고문치사했다. 당시 가족들은 시신 을 수습하는 것도 무서워 가족묘지에 안장하지 못했다. 공동묘지에 가매장됐던 시아버지 시신은 4·3이 완전히 끝난 다음에야 가족묘지로 이장해 모셨다. 가족들 은 제주도에 사는 것이 두려워 모두 일본으로 밀항했다. 막내딸만 제주에 살고 있 어 일본에 있는 가족들이 막내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줬다. 막내딸은 그 고마움으 로 4·3 60주년을 맞는 해에 부친의 위령비를 세웠다.” 한편 희생자 차두옥은 1947년 4월 28일 제주지방심리원에서 ‘포고 제3호 및 법령 제19호 제4조 위반’죄로 징역 6월, 벌금 2천 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기 도 했다. 그의 판결문에는 그 이유를, “1947년 3월 2일 무허가집회로 3·1절 기념 행사를 거행하고, 3·1대책위원장으로 피선돼 경찰관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작성 발표하였기 때문이다”고 하고 있다. 차두옥 선생 위령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