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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의 주민들이 죽거나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특히 이날은 군·경·민 합동토벌 작전이 벌어져 대부분의 젊은 청년들과 지서 순경들이 마을을 비운 상태에서 맞 은 습격이라 인명피해가 컸다. 이날 물적 피해도 많이 발생해 가옥 70여 채가 불 에 탔고 학교도 전소됐다. 무장대의 습격은 2월 8일에도 이어졌다. 이러한 무장대 습격이 있고 난 후에는 반드시 토벌대의 보복학살이 이어져 인명피해가 가중됐다. 성읍1구는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중산간 지역에 위치해 있었지만 인근의 다른 중산간 마을과 달리 초토화작전을 면할 수 있었다. 주민 현봉진(2003년 78세, 남) 은 이에 대해, “지역 유지들이 각별한 노력이 있었지 않느냐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 성읍1구가 초토화를 면한 데에는 앞의 증언 이외에도 마을에 지서가 있었 고, 자체적으로 일찍부터 민보단을 조직해 마을경비를 강화한 덕이기도 했다. 그 러나 이런 이면에는 많은 주민들의 증언에도 나타나듯 주둔한 토벌대의 뒷바라지 를 하느라 큰 고역을 치른 흑역사도 동시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 어야 한다. 한편 성읍2구는 1948년 겨울에 소개됐다. 그 후 주민들은 연고지를 찾아 1구 나 타 지역에 흩어져 살다 1955년 들어 마을을 재건하고 복귀했다. 성읍리는 남로당제주도당의 거물급 간부였던 조몽구의 고향이다. 그는 일찍 부 산으로 떠나 화를 면했으나 그의 아내와 4남매의 자식들은 한꺼번에 표선백사장 에서 총살되는 비극을 맞았다. (표선리-학살터-한모살, 참조) 성읍리의 주요 주민학살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9년 1월 13일: 무장대가 성읍리를 습격해 강계옥(38, 여)을 비롯한 40명을 살 해하고, 강만호(46, 남) 등 4명을 부상케 함. 이에 경찰은 보복 학살에 나서 무장대 습격이 끝나자 송정석(43, 남)을 비롯한 4 명을 무장대와 내통했다며 연행함. 그 후 송정석은 모슬포경찰 소로 이송 도중 총살되고, 홍봉대(22, 남)는 2월 중순 서귀포에 서 학살됐으며. 김순희(36, 남)와 박생운(25, 남) 1 은 행방불명됨 1월 14일: 경찰이 고권오(55, 남)·강계호(47, 아내)·고방선(5, 아들) 가족 3명과 고계윤(21), 김홍선(20) 등 5명을 무장대 관련자라며 총 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