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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 구좌면 한편, 1948년 6월 16일, 우도지서장 양태수 경사(27, 남)가 배를 타고 제주시 로 이동하다 조천면 북촌포구에서 피습을 당해 사망하고, 같이 승선했던 진남호 순경(23, 남)은 총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가 인정한 연평리 4·3희생자는 10명으로 남자 9명, 여자 1명으로 나타난다. 1) 주둔지 <우도지서> 가. 소재지 제주시 우도면 우도로 21 (연평리 1675-8번지) 나. 개요 연평리에는 1946년 12월 14일, 북제주 지역을 관할하던 제1구경찰서 소속으 로 우도경찰파견소가 설치됐다. 연평리에서는 1947년 3·1절 기념식 이후 관덕정 마당에서 경찰 발포로 사망자가 발생하자 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연달아 열렸다. 다음 두 건의 신문기사가 당시 연평리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제주신보』, 1947년 3월 28일 이번 사건의 여파로 17일2 성산면 우도에 또 다시 불상사건이 발생하였다. 동 도에 는 파견소에 경관 3명이 주재하고 있는데, 17일에는 동 도민들이 파견소 간판, 게시판 을 파괴하는 등 소동이 일어났다 하는데, 동 도와 본도 사이에 연락이 두절된 관계로 26일에 비로소 소식이 전해져 경찰에서는 즉시 응원경관대 15명을 파견하였다 한다. 2) 제민일보4·3취재반, 『4·3은 말한다』 제1권, 1994, 351~354쪽.: 이 기사에서는 사건 발생일을 『제 주경찰사』와 『제주신보』의 속보기사, 현지 주민의 증언 등을 종합해 3월 14일로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