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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 표선면 다. 현황 당시 버들못은 우마들이 이용하는 연못이었다.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고 해서 버들못으로 불렸던 이 연못의 인근 밭이 당시 학살터이다. 이곳은 현재 과수 원으로 조성됐고, 버들못도 메꿔져 주차장으로 쓰이면서 당시의 흔적은 모두 사 라졌다. 3) 민간인수용소 - 표선국민학교 가. 소재지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동서로 293 표선초등학교 (표선리 456번지) 나. 개요 이곳에는 소개령에 따라 표선리로 피난갔던 가시리민들이 일시 수용됐었다. 1948년 11월 22일께 가시리에 소개령이 내려졌다. 가시리는 일주일 전부터 느 닷없이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집이 불타고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터라 일부 주 민들은 이미 가족 단위로 마을 인근의 궤나 숲속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다. 소 개령을 전달받은 가시리민들은 연고자를 찾아 해안마을로 내려갔다. 대부분은 표 선리로 소개했다. 토벌대는 이렇게 표선리로 소개내려온 가시리민들을 표선국민 학교에 수용했다. 그 후 가시리민들은 이곳 학교 2~3개 교실에 분산돼 거의 한 달 동안 비좁았지 만 평안한 생활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학교에 군부대나 토벌대가 주둔한 것도 아니어서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러다 한 달 후인 1948년 12월 22일, 토벌대는 이곳에 수용됐던 주민들 중에서 가족이 하나라도 없는 사람들은 도피자 가족으로 분류해 76명을 한꺼번에 버들못 인근 밭에서 총살했다. 이날 집단학살 후에도 토 벌대의 만행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토벌대는 그 후에도 이곳에 수용됐던 주민들 을 걸핏하면 한모살로 끌고나가 총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