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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거기 수용자 명부를 작성할 때 14살로 올려놓은 겁니다. 그래서 저도 15살 미만이 돼 서 살아나온 겁니다. 저하고 동갑인 친구도 같이 수용생활하다 그때 죽은 사람이 있습 니다. 이제 우린 나오니까,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도피자 가족이라고 이름을 부르더니 다 몰고 갔습니다. 그때 희생자가 76명인가 그럴 겁니다.” 오씨의 사연은 너무 처절했다. 당시 오씨의 형님들은 이미 결혼해서 따로 살림 을 냈었는데 그게 형들이 없다는 이유가 되고, 도피자 가족이 되어 부모가 학살됐 던 것이다. 이날 학살된 시신들은 흙만 살짝 덮은 채 1년 정도 방치돼 있었다. 그러다 가시 리가 재건되면서 조금씩 여유를 찾은 유족들이 하나 둘 찾아갔다. 오씨는 “그때 흙 덮었다가, 그 다음 해 여기 올라온 후에 마차에 시신을 실어서 여기 와서 묻었 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한복을 입었는데 한복 두루마기 안에 담뱃대를 딴딴하게 묶어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일부러. 그 담뱃대로 찾으라고요. 시신을 보니 그 렇게 해놓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덧붙였다. 버들못 인근 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