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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 구좌면 1948년 12월 10일: 한기생(43, 남)이 평대리 동동(갯머리, 현 성림사 입구)에서 토 벌대에 총살됨 12월 17일: 강성옥(87, 남)·고해원(74, 여) 부부가 김녕리에서 총살됨 12월 미상일: 송당리 인민위원장 고윤하2 의 일가족 4명(모친 정충삼 79, 처 김신생 50, 딸 고완수 22, 손녀 김○○)이 토벌대에 총살됨 1949년 1월 5일: 김완익(46, 남)이 평대리 갯머리 부근에서 마을 주민 10여 명 과 함께 총살됨 1월 10일: 김성근(32, 남) 등 3명이 월정리 군부대 부근에서 총살됨 1월 23일: 김원희(30, 남), 김창수(22, 남) 두 명이 행원리 모래동산에서 총살됨 1월 미상일: 고윤하의 두 자녀 고윤자(8, 여)·고○○(6, 남)가 행원마을 부근 에서 총살됨 3월 3일: 송당국민학교 교사였던 김성사(31, 남)와 김신생(30, 남), 송당 리 구장 김우생(46, 남)이 세화국민학교 동쪽 모살동산에서 지 역 주민 10여명과 함께 총살됨. 송당국교 학생 고태금(21, 남) 은 평대리 절간 옆에서 총살됨 (상도리–학살터–연두망, 참조) 채희주의 증언이 이어진다. “세화지서에서는 금품을 갈취하느라 소개민을 많이 죽였습니다. 일단 잡아 놓고 죽이다 보면 뭐가 나오거든요. 우리 마을 출신 우익 청년단장이 거간꾼 노릇을 했는데, 소 한 마리 값을 바치면 풀어 준다고 했습니 다. 송당리 일등 부자인 김성사는 금품 요구를 거절했다가 죽었습니다. 우리 형 (蔡權柄)이 끌려간 후에도 청년단장으로부터 흥정이 들어왔어요. 아버지는 부랴 부랴 소 한 마리 값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풀어주기로 한 날에 마침 월정리 주 둔 군인들이 지나다가 감금돼 있던 형을 죽였습니다.” 무장대가 송당리에서 주민을 살해하기도 했다. 2) 고윤하(50, 남): 그는 송당리에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며 서당 훈장을 하고 있었다. 1948년 5월 일자 미상일에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무장대와 손잡을 염려가 있다며 집에 있던 그를 연행해갔다. 그 후 그는 제주형무소를 거쳐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52년 2월 8일(음력 1월 13일) 옥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