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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1948년 6월 9일: 고일하(35, 송당리인민위원회 위원장 고윤하의 동생)가 마을 부근에서 토벌대에 총살됨 6월: 이두문(21, 남)은 성산포지서로 끌려간 후 총살됨 9월 7일: 한진옥(24, 남)은 당오름 부근에서 토벌대에 총살됨 송당 마을이 이렇게 한동안 조용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군경비대가 주둔했 기 때문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경비대가 주둔함으로써 오히려 세화지서 경찰로부 터 마을을 보호하는 순기능을 했다는 것이다. 한 주민(채희주, 1998년 80세)의 증언이다. 1 “학교에 주둔한 경비대를 찾아가 하소연을 하니까 대장이 나와서 ‘앞으로는 개놈(경 찰)도, 산군(山軍)도 우리가 책임질 테니 농사나 잘 지어라’고 하더군요. 군대가 있을 때 는 순경들도 함부로 마을에 오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세화지서 순경들이 인민위원장 집을 불지르고 도망치자 청년들은 앙갚음으로 우리 마을 출신 경찰의 집으로 몰려가 돼지를 잡아먹으며 잔치를 벌였어요. 그래도 경비대는 못 본 척 했습니다. 6월 20일에 는 경비대가 주민 전부를 집합시킨 적이 있는데 그때도 인민위원장 고윤하(高倫河)만 을 잡아갔습니다.” 1948년 11월 22일께 군경토벌대는 며칠 내 마을에서 떠나라는 소개명령을 주 민들에게 내렸다. 그런 며칠 후 토벌대는 송당 전 지역을 초토화했다. 다행히 주 민들은 사전에 몸을 피해 소개 당일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 후 가을걷이한 곡식과 우마를 지키려 소개에 응하지 않았던 주민들과 미리 산으로 피신해 생활하던 젊 은이들이 토벌과정에서 가끔 학살됐을 뿐 마을 인근에서 큰 학살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화리나 평대리 같은 해안마을로 소개갔던 주민들의 고초와 학 살은 계속 이어졌다. 1) 제민일보4·3취재반, 『4・3은 말한다í�� 제5권, 1998, 24∼25쪽. (이하 채희주의 증언은 모두 이 글을 참조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