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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제주읍 됐다 총살됨 12월 8일: 김두현(51, 남, 제주도청 총무국장)은 서청에게 고문을 받고 사 망함 12월 23일: 김원중(43, 남, 제주도청 장학관·제주남국민학교 교장)과 현경 호(53, 남, 제주중학교 교장)·현두황(22, 남, 제주중학교 교사) 부자는 이달 초순 제주농업학교로 연행된 뒤 이날 아라리 박성 내 부근 연자방앗간4으로 끌려가 학살됨 12월 28일: 문봉택(40, 남, 운수업), 배완평(25, 남, 공무원), 채세병(33, 남, 제주도청 장학사)은 토벌대에 연행됐다가 이날 애월읍 신엄리 자운당에서 학살됨. 이날 자운당에서는 현재까지 49명이 학살 된 것으로 확인됨 (신엄리-학살터-자운당-2, 참조) 1949년 1월 16일: 서대진(23, 남, 해무청 근무)은 경찰에 연행된 뒤 신엄리에서 총살됨 1950년 3월 8일: 채홍훈(21, 남, 제주경찰서 경찰)은 무장대와 내통혐의로 군법 회의(1948. 12. 9.)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 수 감됐다 이날 옥사함 정부가 인정한 삼도리 4·3희생자는 87명(남 79명, 여 8명)이다. 4) 이날 사건의 학살장소에 대해서는 여러 보고서가 조금씩 같은 듯 다른 장소를 적시하고 있음. 그 이 유는 주요 증언이 애초 정확한 장소를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임. 먼저, 정부의 4·3진상조사보 고서(382쪽)는 ‘고산동산 부근의 말방앗간’으로 적시함. 그러나 다른 보고서에는 ‘광양 부근의 말방 앗간’이나 ‘박성내 부근의 말방앗간’으로 표현됨. 여기서는 여러 증언과 자료를 참고해 ‘박성내 부근 의 말방앗간’으로 정리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