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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역사적 의의 어찌 이날을 잊으오리까!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38선은 무너지고, 서울이 함락되는 등 전 국토는 파괴되었다. 수백만의 피난민과 주민들이 희생하는 등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으나, 국군과 UN군의 불굴의 투지와 헌신으로 3년 1개월 동안의 치열한 민족상잔 6·25전쟁을 극복하고 자유와 평화를 지켜냈다. 당시, 대한민국 국군 94만여 명(중랑구 출신 참전용사 2,100여 명)이 참전했으며, UN군 (전투지원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 등 22개국)은 미군 179만여 명을 포함하여 연인원 195만여 명이 대한민국과 함께 싸웠다. 반면, 우리나라를 불법 남침한 북한군은 낙동강 축선까지 침략했다. 그러나 9월 15일 UN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이어 국군과 함께 총반격 작전으로 서울은 다시 수복되었다. 국군과 UN군은 10월 초 38선을 돌파, 북진하여 평양을 거쳐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10월 19일 중공군 수십만 명의 대규모 군사력투입으로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좌절되었고 휴전협정 때까지 전쟁은 지속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실시된 휴전협정(UN군과 중공군 북한군)으로 전쟁은 중지되었으나, 현재의 철의 장막인 군사분계선(MDL)은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아직도 남·북한은 휴전상태에 있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국군 전사자 13만 8천여 명, UN군 전사자 4만 8백여 명(미군 전사자 36,574명) 그리고 민간인 사망도 수십여만 명이 희생되었다. 국군 및 UN군 참전영웅들의 결전항전 및 용맹(勇猛) 그리고 각종 포화 속에서 능선마다 붉은 피를 뿌리며 자유와 평화를 끝까지 사수한 살신성인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도 상존하고 있다. 6·25전쟁 참전영웅들이 뿌린 고귀한 씨앗으로 강성한 대한민국 국방력과 풍요로운 부강한 나라로 영원불멸의 꽃을 피었으니, 후손들은 이 기념비에 새긴 영웅들을 추모하며 님들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길 바란다. 2026년 3월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 중랑구지회 참전용사 일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