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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나. 개요 큰곶도는 ‘큰 숲의 입구’라는 뜻으로, 정삼용, 고명옥, 김대봉, 김대원 등 10여 가호의 주민 50여 명이 살았다. 마을 이름의 한자표기는 대림동(大林洞)이다. 1948년 11월 18일께, 덕천리가 초토화되면서 주민들은 김녕리 같은 구좌면의 해안마을이나 조천면의 해안마을로 연고지를 찾아 피난생활을 떠났다. 다행히 소 개한다는 정보가 사전에 주민들에게 알려져 황급히 몸을 피했기 때문에 소개 당 일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그때 소개를 떠나지 못했던 사람들이나, 소개지에 서 도피자 가족으로 몰린 주민들은 그 후 많은 희생을 치렀다. 4·3 시기 이곳엔 김 창봉이 운영하던 큰 대장간도 있었다. 일꾼이 2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 고, 종달리 소금밭의 솥과 보습도 만들어 납품했다. 그러나 지금, 그 흔적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1951년 봄, 덕천리가 재건되면서 하덕천을 중심으로 복구됐기 때문에 본동과 떨 어져 있었던 큰곶도는 끝내 재건되지 못하고 지금도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 있다. 다. 현황 하덕천에서 선흘로 향하는 남쪽 길로 100m 정도 가다보면 좌측으로 별장주택 큰곶도(대림동) 마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