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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 제주4·3유적 Ⅰ_ 제주시편 령이 마을 사람들에게 미리 전해져 별 인명피해 없이 해안마을로 소개갈 수 있었 다. 그러나 그 후 소개지에서의 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인명피 해도 엄청났다. 특히 김녕리로 피난갔던 덕천 주민들은 하루에 16명이 집단총살 되기도 했다. 덕천 주민들이 학살된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0월 25일: 고하석(31, 남)은 덕천리 대천동 부근에서 경찰에 총살됨 12월 25일: 김녕리로 소개갔던 강창수(18, 남) 등 덕천리 주민 16명이 김 녕농협 앞밭에서 경찰에 집단총살됨 (김녕리-학살터-김녕농협 앞밭, 참고)1 덕천 주민들은 그 후에도 소개지에서 토벌대에 많이 학살됐다. 1949년 미상일: 한동리로 소개 갔던 조봉택(21, 남)·김열규(22, 여) 부부와 고 을선(24, 남), 부순화2가 경찰에 연행돼 한동리 모살동산에서 총살됨 1) 이날, 이곳에서 형님 이두석을 잃은 이대진(1938년생)이 당시를 증언하기도 했다. “우리가 내려간 후에 산쪽에 협력했다고 강씨를 위시해서 한 20여 명이 잡혀갔지. 그때 형님은 우체국 집배원으로 김녕에 살고 있었는데 같이 잡혀갔어. 먼저 잡혀간 놈이 이놈도 산에 협력하고 저놈도 했다고 (밀고) 했던 거야. 그러면 살려줄 줄 알고. 그러던 어느 하루, 차에 싣고 가서 김녕 한라식당 앞의 밭으로 끌 고가 다 죽여버렸어. 나는 그때 길가 집에 살았거든. 그래서 차에 타고 있던 형님을 봤어. 그러니까… 나는 그때, 형님이 살아나는 줄로만 알고 집에다가 이래 저래서 형님이 돌아온다 이야기까지 한 거 야. 그런데 곧 김녕농협 앞쪽에서 총소리가 팡팡 났지. 도대체 총살시킨 이유를 모르겠어. 보상을 받 지는 못할망정 어떤 죄명을 씌워 죽였는지 만이라도 알고 싶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런 사람들의 고혼이라도 달래줄 뭐가 있어야 한단 말이야.” 또한 이 사건에 대해 다른 증언자는 “처음엔 민보단원에게 철창으로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곧 경찰 이 확인사살을 했다”고 말하기도 함. (제민일보4·3취재반, 『4·3은 말한다』 제5권, 1998, 31쪽.) 2) 부순화는 현재 4·3희생자 신고가 되어 있지 않다. 제주도교육청이 발간한 『4·3사건 교육계 피해조 사 보고서』(2008)에 따르면, “1949년 2월 당시 송당(국민학)교는 교장 고부남(와산 출신)과 교사 김 흥서, 김신생, 그리고 강사로 부순화(하덕천 출신) 등이 근무하였다. 그중 부순화는 좌익 성향이어서 평대리에 소개된 후 평대리 사거리에서 총살당했다. 김흥서와 김신생 교사도 평대리 소개지에서 부 순화와 같이 근무했으니 한통속이라는 누명을 쓰고 경찰에 의해 1949년 음력 2월 23일 총살됐다 고 송당리 주민 홍박재·홍태규·김영근이 증언하고 있다.”